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라고 했다)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갔을 때를 기억하자면 입학 당시의 두려움과 들국화가 가장 떠오르는 것 같다.
초딩 6학년 시절 1년간을 겁대가리는 1도 없이 설치며 보내다 들어선 중학교는 마치 어른 vs 어린이의 느낌 그 자체로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포스와 냄새를 풍기며 갈취와 폭력은 합법이라는 선배들과는 가능한 마주치지 않는 것이 옳았었다.
그래서였던가 1학년 초반에는 선배들의 온상, 매점에 잘 가지 못했었다.
지금도 옥수수 똘뱅이라고 판매되는 과자를 그 당시 우리는 “김일성 과자” 라고 했는데 학교 매점에서 파는 그것이 엄청 맛있었다.
들국화 1집 발매
1985년 중딩 1학년 여름 방학을 보내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초등 5학년때부터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카세트 테잎에 녹음을 하고 다시 듣곤 하던 짓을 중딩 때도 여전히 똑같이 하던 어느 날 들국화의 행진이 흘러 나왔는데… 시간이 멈춘 것 같으면서… 이게 대체 뭐지…
그 날 오후의 조용함과 어우러져 중딩 1년차가 감당할 수, 형언하기 힘든 어떤 분위기가 참 멋졌었다.
그 충격은 왠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내 일주일 쯤 후부터 라디오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도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속에 이미 간질간질 거리는 노래는 하찮게 생각하며 팝을 주로 들었었는데 당시 들국화 1집은 결코 거리에서 흘러 나오는 여느 노래와는 분명 떡잎부터 달랐던 것이다.
지금도 “그것만이 내 세상”은 첫 손가락에 올려야…
난생 처음 레코드 판(LP)를 사다.
마침 라디오, 카세트, LP 가 한몸 이었던 저렴한 전축(?) 을 아버지가 사주셨기에 레코드 가게에서 들국화 1집을 구매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예술 작품을 돈을 주고 산 것. 당시 2500원 쯤 이었던 것 같다.
전축을 내 방으로 옮기고 낮에는 크게, 밤에는 볼륨을 작게 해서 끈질기게 들으며 이내 가사는 물론 호흡, 기타 애드립 소리와 드럼까지 줄줄 따라 하게 되었다.
학교에 가면 친한 녀석들 중 나와 같은 추종자들이 몇몇 있었고 우리는 곧 말도 안되는 일을 겪게 된다.
부산 무궁화 홀, 들국화 컨서트
이듬해였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길거리에 붙은 들국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들국화라는 단어, 사진만으로도 그 포스터는 내 쟁취 대상이었고 기어코 떼서 들고와 방안에 붙여 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가 무적의 꼰대가 되어 버린 지금이지만 아이돌이 무대에 올랐을 때 괴성을 지르고 하는 팬들의 심정을 나는 잘 알고 있다. ㅍㅎㅎ
추종하던 친구 녀석들과 처음 찾아가 본 무궁화 홀 앞에는 1줄로 늘어선 대기줄이 건물을 빙 둘러서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 들어간 무궁화 홀은 괴기스러웠던 것 같다. (부산 무궁화 홀은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 검색을 잠시 해봤는데 사진은 못찾겠다.)
난생 처음 본 컨서트는 정말 너무나도 대단해서 머리털이 쭈뼛 소름이 쫙 돋는 시간으로 시작해서 끝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들국화가 첫 앨범 발매 후 첫 부산 컨서트인데 너무 잘 했던 것 같다. 공연을 보러 왔던 많은 사람들 모두 1도 빠짐없이 완전 미쳤었다.
허성욱 피아노는 라이브에서 너무 아름다웠고 주찬권이 베이스 드럼을 퍽퍽 킥 할 때는 가슴과 고막이 같이 진동했고 젊었을 때 전인권이 순간 카랑카랑한 쇳소리로 “사랑일 뿐이야~~!” 를 내지를 땐 전부 자지러졌었다.
이 후 들국화가 부산에 오는 소식만 있다면 헤비메탈에 빠져들기 전인 고딩 1학년때까지 의무인 것 마냥 맹렬하게 컨서트를 보러 갔었다.
고딩때는 지금도 남천동에 자리 잡고 있는 KBS 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때 같이 간 친구 녀석은 나와 같이 무대 앞에 있다가 갑자기 갖고 온 밀짚 모자에 편지를 달아서 부메랑 던지듯이 무대 위로 날려서 전인권이 노래중에 이걸 주워 쓰고 몇곡을 했는데… 이놈 이거 그때 완전 자지러졌었다. 그 녀석도 아주 극성 팬었는데 아마 아직도 그럴 것 같다.
들국화로 시작된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사랑
들국화를 시작으로 동시대 활동했던 김현식, 어떤날 등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의 LP를 자꾸 사 모으게 되었다.
당시 발매되는 앨범에는 꼭 1곡의 건전가요를 수록해야 했는데 “우리의 소원” 이 그 역할이었지만 이를 다 듣고 판을 뒤집었을 정도로 사랑했던 들국화에 대한 열망은 “추억 들국화” 앨범 이후 점점 사그라들기(헤비메탈 기타에 심취하면서…) 시작했지만 50에 접어든 지금도 플레이리스트에는 들국화의 여러 곡 들이 있다. 가끔 들으면 아직도 참 좋다.